아동납치범이 아동복지사가 된 SSUL
옛날 인도에 아이를 데려가는 존재가 있었다.
이름은 '귀자모신'으로, 괴물이나 잡귀가 아니라 원래는 신이었다고 한다.
자식이 500명인데 먹일 게 부족해지니까 남의 집 아이를 데려다 자기 자식에게 먹이는 짓을 범한다.
아이들이 자꾸 사라지니까 동네에서는 집집마다 문단속 신경 쓰고,
애 키우는 집은 밤에 예민해지고, 괜히 소리만 나도 확인하러 나가는게 일상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가 부처 귀에 들어가가자 귀자모신의 막내아들 하나를 숨긴다.
500명 중 한 명.
그 한 명이 없어지자 귀자모신은 완전히 무너져서 아이를 찾아다니고, 울고,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귀자모신이 부처를 찾아오자 부처는 말한다.
“너는 자식이 500이나 되면서도 하나 잃고 이렇게 괴로워한다.
그럼 자식이 하나뿐인 부모의 마음은 어땠겠느냐.”
남의 아이는 그저 ‘한 명’이었고,
자기 아이는 ‘전부’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다.
그 이후 귀자모신은 아기의 양육과 보호를 맡고, 아이가 없는 가정에는 아이를 점지해주는 신이 되었다.
지금 불교에서는 아이 수호신으로 모신다.
절에 가면 아이를 안고 있는 여신상이 있는데,
그게 이 설화의 주인공이다.
이 이야기가 남는 이유는 단순하다. 처벌이 아니라 ‘체감’으로 바꿨다는 점.
사람은 자기 손해는 크게 느끼고
남의 손해는 계산으로 처리한다.
귀자모신도 내 아이 1/500은 세상의 전부였고
남의 아이 수십은 그저 숫자였다.
공감이 끊기면 누구든 괴물이 될 수 있고
한 번 제대로 느끼는 순간, 방향이 바뀐다.
귀자모신 이야기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귀신 얘기라서가 아니라 사람 얘기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