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사랑은 효율이다.
세상의 헤게모니가 과학과 규칙, 법칙으로 정리됐다.
정보의 생산 마저 만들어진 신에 의해 무한히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 힘이라는 종의 법칙을 유지하려,
힘에 부치더라도 꾸역 꾸역 오늘도 우리는 배운다.
인간의 뇌는 구별과 묶음에 익숙하다.
펜더와 강아지, 바나나를 우리 뇌는 밥 한톨로 정리할 수 있다.
컴퓨터가 백만가지 사진들을 취합하고, 기름을 이빠이 쳐먹어가며 알아야 하는 정보를
인간은 정리한다.
그 익숙한 방법은 과학이라는 헤게보니를 만나
규칙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스스로를 가둬간다.
지성을 갖고 있는 우리는
행위적 만족에 정리하고, 규칙을 세우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각각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4차원을 살아가는 3차원의 존재들은 오롯이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
어둠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규칙으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다양화된 개인들은 그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더 많은 합의에 에너지를 쏟게 된다.
밥 한톨이면 될 에너지가 삼천이백오십사만 이천 오백 오십 세 끼니로 변한다.
광기와 욕심에 핏대 선 눈으로 피를 튀긴다.
우리는 2천년 전 가치를 다시 되뇌이자.
사회적 합의 전 사랑의 합의는
헤게모니가 그토록 사랑하는 효율의 극치이다.
이해와 사랑으로 함께하는 한 끼가
수 천만 가지의 이해관계를
오묘하게 정리할 수 있다.